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요한 23세 (문단 편집) === 교회 쇄신에 매진한 탈권위주의자 === 현대 [[가톨릭교회]]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교황이다. 본시 성품이 '''소탈하고 서민적'''이었고 개인적인 욕심도 없었지만, 교황으로 당선된 초부터 가톨릭교회를 '''쇄신'''하려고 결심한 상태였다. 현대 사회의 발전과는 달리 격리되어 쇠퇴의 위기를 맞고 있던 가톨릭교회의 쇄신을 위해 노력했다. 권위주의적이던 이전의 교황들의 스타일에서 탈피해, 되도록 '''검소하고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단적인 예로, [[교황청]] 기관지인 <로세르바토레 로마노>에서는 교황에 대해 언급할 때, 말하자면 "존엄하신 분의 [[입술]]에서 옥음이 내리셨다" 같은 식으로 표현했는데, 요한 23세는 그냥 "교황이 말했다"라고 쓰라고 지시했다. 이런 공식적인 활동에서뿐만이 아니라 교황청 안에서 인부들과 만날 때에도 시골 [[신부(종교)|신부]] 같은 '''온화하고 탈권위적'''인 태도로 대해서 크게 인망을 얻었다. 추기경들은 교황이 너무 권위가 없다고 싫어하기도 했다. '''사회정의에도 관심'''을 쏟아서 회칙 <어머니요 스승(Mater et magistra)> 등 관련 교서를 발표했는데, 미국의 우익 신자들이 반대하는 성명을 내는 등 당시 가톨릭의 분위기에 거스르는 점이 많았다. 또한 다른 [[그리스도교]] 종파들, [[동방정교회]]와 [[개신교]]와의 화해 및 대화에 대한 노력을 기울인 교황이기도 했다. 이미 교황이 되기 전부터 동방정교회와의 대화에 노력한 요한 23세는, 동방정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하던 이전의 시각에서 탈피해 '''갈라진 교회(이교)'''로 규정했다. 또한 1961년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세계 교회 협의회]]에 대표를 파견하기도 했다. 개최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개신교 역시 (정교회처럼 이단 상태에서 해제되진 않았지만) ''''갈라진 형제''''로 규정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